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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 거란 전쟁 강민첨

by 아몽지크 202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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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거란 전쟁에서 활약한 강민첨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고려 거란 전쟁에서는 많은 영웅 인물들이 나타났고,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아있습니다 그 영웅들 중 한 명인 강민첨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자세하게 살펴보고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강민첨 초상화 출처 한국학 중앙연구원, 경남문화복지평생교육신문

 

강민첨의 출생과 성장

강민첨은 963년 고려 광종(14년) 11월 29일 경상남도 진주의 옥봉산 아래 개경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 진주시 옥봉남동 은열사가 있는 곳입니다

강민첨은 15세까지 진주 향교에서 학문을 부지런히 익혔으며, 고을 청소년들에게 교육을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진주에서 살다가 우방산(현재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터를 잡아 조상을 위한 원당이란 집을 짓고 여기에서 문무를 익혔습니다

현재 우방산 집터에는 은열공이 심었다고 하는 은행나무가 남아 강민첨 삶의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강민첨은 43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장사랑이라고 하는 첫 벼슬에 올랐습니다 해동공자라고 불리는 문헌공 최충과 람께 급제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강민첨은 문과에 급제를 하였지만 문무관직을 두루 역임하여, 문무를 겸비한 관료로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강민첨은 48세 때 현종(1년) 1010년 애수진(함경남도 고원군의 서쪽)장에 임명되었습니다 이해 11월에 거란 성종이 기병 40만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하였습니다

 

강민첨의 활약상

강민첨은 애수진장으로 복무하던 중 거란 성종이 통주전투에서 강조를 죽이고 승승장구하며 남하하여 서경성에 도착하기 전 고려 현종의 명을 받아 휘하군사들을 이끌고 달려와 서경성을 지원하려고 왔습니다

거란성종이 서경성에 도착했을 때 서경성 내에는 항복하자는 세력과 싸우자는 세력의 분란 있었고, 탁사정 등 많은 관료들 및 병사들이 도망을 갔지만, 강민첨은 성내에 남아 남아있는 백성들과 뜻을 함께하기로 한 장졸들의 힘을 모아 서경성을 지켜냈습니다

거란 성종은 9일간 서경성을 대대적으로 쉴틈없이 공략했지만 거란군에 맞선 강민첨 휘하 백성 및 장졸들은 죽을 각오로 서경성을 지켜냈습니다 이로 인하여 거란 성종은 서경성에서 시일을 많이 허비하게 되었고, 후방의 거란군이 점령한 곽주성 마저 보급 중간 기지로 활용하여 거란군의 보급을 차질 없게 하려고 했는데, 고려군 양규와 김숙흥의 활약에 고려군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서경성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중간 보급기지를 잃은 거란 성종은 서경성 점령을 포기하고 주력부대를 이끌고 개경으로 갔으나, 고려 현종은 9일간 서경성에서 시간을 벌어준 덕택에 무사히 나주로 몽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개경이 점령되고, 나라의 여러 지역이 초토화 되었지만, 서경이 무사함으로 인하여 거란군은 더 이상 남하 하지 못하고 철군하게 되었습니다

거란군은 철군하면서 고려군의 맹렬한 활약에 많은 피해를 보며 돌아갔습니다 고려와 거란의 9일간의 서경성 공방은 누가 승자고 패자인지 결정 난 전투는 아니었지만, 고려 거란 전쟁이 빨리 끝나게 된 중요한 전투였다고 판단됩니다

 

강민첨은 49세 (현종 2년)1011년 고려 현종으로부터 도관시원외랑을 제수받고 비어대를 하사 받았습니다 비어대는 관복입니다 어대는 물고기 모양의 시표를 넣어두는 주머니입니다

강민첨은 50세 1012년  5월에 동여진이 영일, 청하 등지에 쳐들어오자 고려 현종의 명을 받아 문연, 이인택, 조자기 등과 함께 부주방어사로서 고려 군사를 이끌고 나가 동여진을 격퇴하였습니다

 

강민첨은 56세 (현종 9년)1018년 태복경을 지내고 이 당시 거란 장수 소배압이 10만 정예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하였습니다 이때 고려 현종은 강감찬을 상원수로 삼고 강민첨을 원수로 삼아 20만 8천 명의 군사를 주어 거란을 방어하게 하였습니다 고려군은 영주의 흥와에 진을 치고 소가죽으로 큰 강을 막고 있다가 거란군이 강을 건너자 막은 물을 한번에 흘려보내 거란군 다수를 수장시켜 거란군의 예봉을 꺾었습니다

거란군은 정예병으로 이에 굴하지않고 개경까지 남하하였지만, 자주(지금의 평남 자산)에서 강민첨의 공격을 받고 큰 손실을 입었으며,  지속되는 고려군의 거센 공격과 저항에 결국 철수하게 됩니다

거란군이 귀주에 도착했을 때 미리 이를 알고 귀주에서 기다리던 강감찬과 고려 지원군 김종현의 공격에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하고 살아 돌아간 병력이 수천에 불과할 정도였습니다

고려 거란 전쟁에서 귀주전투에서 강민첨 역시 중요한 인물임에도 역사 속에서는 여러 인물의 공적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강민첨은 57세 때 은청흥록대부 응양상장군 상주국에 발탁되었습니다 58세 때에는 병부상서 현릉 개장의 공으로 금자흥록대부에 제수되었습니다 이듬해 59세 때 11월 12일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묘소는 충청도 예산현 감천동입니다

고려 현종은 강민첨 사망 후 3일 동안 조회를 하지 않았으며, 그의 공로로 아들 강단에게도 재물을 하사하고 태자태사에 추증 하였습니다 고려 문종 때에는 공신각에 올려졌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태종도 강민첨의 위대한 공적을 다시 거론하고 우방산과 두방산의 땅 약3000정보를 내렸다고 합니다

강민첨이 떠난지 약 1천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진주를 중심으로 한 강민첨의 후손들은 공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월 초하루 보름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강민첨에 대하여 알아보았는데 분명히 고려 거란 전쟁에서 고려를 지켜낸 영웅들 중 한 명으로 많은 후대 인들에게 구국영웅으로 더욱 알려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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