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역사의 고구려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먼저 고구려가 어떻게 성립하였는지, 그리고 고구려의 기원은 언제부터였는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고구려의 기원과 성립

고구려 건국설화 주몽신화에는 고구려는 백제나 신라의 건국설화에 비하여 내용이 풍부하고 구성이 복잡할 뿐 아니라, 고구려인이 직접 남긴 자료가 전해지고 있어 고구려의 성립과정을 밝히는데 오늘날에도 고구려가 어떻게 성립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주몽설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광개토왕릉비의 서두 부분입니다 모두루묘지와 위서 고구려전의 주몽설화도 5세기 경 기록입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나 삼국유사 동명왕 편 등 국내문헌은 5세기경의 기록에 후대에 다듬어진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몽설화는 부여의 동명설화에 바탕을 두고 4세기 후반 집권적 국가체제의 정비와 함께 건국설화로 확립되었습니다
고구려 왕실의 입장을 반영한 주몽설화의 경우 주몽의 출생을 비롯하여 세부적인 내용에서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전체 줄거리는 대부분 비슷합니다
천제와 수신(하백)의 혈통을 이어받은 주몽이 하늘신과 지모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적권능을 가지고 여러 곤경을 극복하고 졸본토성에 정착하여 고구려를 건국하였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고구려 건국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고구려왕들의 통치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고구려의 건국 설화는 백제의 건국설화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백제 건국설화 서두 부분의 주몽설화는 매우 주목되는데 그 내용은 주몽이 북부여에서 난을 피하여 졸본부여에 도착하여 후사가 없던 졸본부여왕이 사위가 되었다가 그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백제 시조 비류왕의 아버지 우태는 북부여와 해루부의 서손이고 어머니 소서노는 졸본인 연타발의 딸이었다고 합니다 소서노는 우태에게 시집가서 비류와 온조를 낳고 우태가 죽은 뒤 과부로 지냈다고 합니다 부여에서 남하한 주몽이 건국한 뒤 소서노를 비로 맞아들여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주몽은 소서노를 총애하고 비류와 온조를 아들처럼 대하다가 부여에서 유리가 내려오자 태자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이에 따르면 주몽이 부여 방면에서 남하하기 이전부터 졸본지역에서는 졸본부여나 소서노집단 등 선주토착집단이 있었고, 주몽은 이들과 결합하여 세력을 확대하였다고 합니다
압록강 중류일대에서는 일찍부터 토착세력의 성장, 이주민집단의 유입, 토착세력과 이주민집단의 결합이라는 정치적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고구려는 주몽의 신적 권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건국된 것입니다 고구려 왕실의 입장을 반영하는 주몽설화는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시조이 신적 권능으로 신비화하였지만, 고구려의 진정한 건국주체는 주몽집단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압록강 중류 일대 각지에서 성장하고 있었던 선주토착집단입니다
고구려의 성립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압록강 중류일대 토착집단의 성장과정을 면밀하게 알아봐야 합니다
고구려의 발상지인 압록강 중류지역은 서북으로 요동 지역, 동으로 동해안으로 통하는 동서 교통로상의 중간지점입니다 그리고 서남으로 황해, 남쪽으로 대동강, 재령강 유역의 평야지대, 북쪽으로 송화강 유역의 대평원지대나 랴오허강 상류 방면의 초원지대로 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는 고구려의 발전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하였습니다
한편 이 지역은 흔히 큰 산과 깊은 골짜기는 많고 넓은 들은 없어 고구려인들이 부지런히 농사지어도 식량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압록강과 그 지류 유역에는 충적지대(자갈, 모래 진흙의 퇴적지대)가 곳곳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국내성이 있는 통구성이나 오안산성이 위치한 환인현 소재지는 상당히 넓은 분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의 기후는 만주 일대에서 가장 온난하며 강수량도 풍부하여 사람이 살기에 좋다고 합니다
자연조건으로 인하여 청동기시대 이래 이 지역 주민들은 강 연안의 충적대지를 배경으로 농업을 주업으로 삼고 가축 기르기, 사냥, 물고기잡이 등으로 생활을 하였습니다
고고학 및 문헌자료사 중국 북방의 맥족과 압록강 중류지역의 주민집단을 직접 연결시키 수 없습니다 고구려가 처음부터 예족 혹은 예맥족으로 불린 주민집단과 종족적으로 구분되는 맥족이었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고구려를 이룬 주민집단은 원래 예족 혹은 예맥족의 일원이었다가 기원전 3세기~2세기 초경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주변 예맥사회와 구별되는 주민집단을 형성하였고, 기원전 2세기 후반경부터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여였습니다
이 주민집단은 처음에는 구려라는 명칭으로 불리다가 이것이 고구려라는 국가명으로 고정되면서,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점차 '맥'이라는 종족명으로 불렸습니다
고구려를 형성한 주민집단이 예맥족에서 분화하였다는 것은 3세기경 고구려의 언어와 법속이 부여, 옥저, 동예와 비슷하였다는 기록에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민집단의 사회상태는 원래 예맥족의 일원인 동예나 옥저와 비슷하였을 것입니다
고구려를 형성한 주민집단 역시 처음에는 읍락별 공동체적 규제가 강한 상태에서 사회생활을 하였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압록강 중류지역에는 기원전 3세기 중엽에서 기원전 2세기 초 사이에 주변지역과 구별되는 주민집단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들은 문헌자료상 기원전 2세기 후반경에는 예군남려, 구려 등과 같은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정치집단은 대체로 기원전 2세기 중엽경에 성장하였다고 파악됩니다 이 지역정치집단은 이후 여러 단계의 통합과 복속을 거쳐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초기기록에 보이는 나(那)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나(那)는 강가나 계곡에 자리 잡은 지역집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나 집단은 철기문화에 바탕을 두고 성장하였습니다 기원전 3세기경부터 보급된 철기는 기존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도끼와 낫은 농업생산력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쇠도끼는 무기의 성격도 지녔지만 개간을 위한 벌목에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쇠 낫은 수확작업의 효율을 높였습니다 농업 생산력 발달은 읍락별 공동체적 규제의 약화와 사회경제적 분화를 초래하여 계층화의 진전과 세력집단의 형성을 촉진하였습니다 그 결과 농업생산력은 더욱 극대화하였습니다
기원전 2세기 중엽경 위만조선의 압력과 함께 한나라의 영향력이 압록강 중류일대로 뻗어왔습니다 특히, 위만조선은 기원전 2세기초 대세력을 형성한 뒤 기원전 2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주변 집단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여 중국과의 교통을 통제하였습니다 이에 압록강 중류일대의 나 집단들은 유력집단을 중심으로 결집하였는데, 기원전 128년 한에 투항한 예군남려 집단은 이를 보여줍니다
남려의 투항을 받은 한나라는 창해군을 설치하고 도로개설에 나섰다는 기록에서 보듯이 예군남려의 집단은 요동군에서 동해에 이르는 교통로상에 분포하고 있었습니다 28만 명이라는 집단의 규모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합니다 제1 현도군의 인구가 약 4만 5천 호 22만 구였고, 3세기경에도 고구려 3만 호, 동예 2만 호였던 것으로 미루어 예군남려의 집단은 이들 전체를 포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군남려의 집단은 강력한 통치조직을 갖춘 국가체라기보다는 각지의 세력집단이 외압에 대응하여 완만하게 결집한 연맹체로 판단됩니다 다만 각 지역별 집단규모로 보아 압록강 중류지역의 주민집단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연맹체의 중심지역인 압록강 중류일대의 나 집단은 끊임없는 교류를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기원전 126년 한나라의 창해군 설치 계획이 좌절된 뒤 나 집단들은 대외적 결속보다 내적인 통합과 복속을 더욱 활발히 벌여 주변 요새지마다 구류나 홀이라고 불린 성을 축조하였는데 여기에서 구려라는 명칭이 생겨났습니다 그리하여 압록강 중류지역의 주민집단은 대외적으로 예맥 혹인 예라는 일반적 명칭이 아니라 구려라는 특정한 명칭으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108년 한나라는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낙랑군, 진번군, 임둔군을 설치한 다음 기원전 107년 압록강 중류일대에 현도군을 설치하였는데 현도군의 여러 현 가운데 고구려현이 보입니다 이때부터 압록강 중류일대는 대외적으로 구려 내지 고구려라는 단일 정치사회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고 판단됩니다
고구려의 기원과 성립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고구려의 성립은 기원전 2세기 후반 경 압록강 중류 지역토착 세력과 이주민 주몽세력의 결합의 연합으로 성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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